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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의 연인> 책표지.
 <김수영의 연인> 책표지.
ⓒ 책읽는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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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1921~1968)은 닭띠다. 나도 닭띠다. 김수영이 1921년에 났고, 내가 1969년에 났으니 정확히 세 띠동갑인 셈이다. 김수영의 아내인 김현경(1927~현재) 여사는 토끼띠다. 내 아내 박 모 여사도 토끼띠다. 당연히 이들 부인네 또한 세 띠동갑인 셈이다. 참으로 교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게 무슨 '교묘한 인연'이냐며 힐난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어국문학도였으면서 시에 무지하고, 이유 없이 시를 혐오하던 나를 시의 세계로 인도한 김수영 시인이다. 그의 <거대한 뿌리>를 통해서였다. 그러니 어찌 이런 우연의 일치를 교묘한 인연거리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달 중순께였을까.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이 책 <김수영의 연인>에 대한 소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내 멋대로 읽은 김수영' 기사들을 더 풍요롭게 채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내가 김수영 시인에게 일방적으로 던져놓은 인연의 끈이 더 단단해지겠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김수영의 연인>은,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김수영 시인의 사후 45년 만에 내놓는 일종의 회고록이다. 김 여사는 머리말 격에 해당하는 '수영에게 띄우는 편지'를 통해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긴다. 김 여사는 그곳에서 이 책을 이렇게 규정하였다.

당신 곁에서 당신 작품의 첫 독자였던 사람으로, 아내로, 한 여인으로, 이 책은 그때처럼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정서한 거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8쪽)

그래서였을까. 책을 받아쥐고 읽는 내내 글 속의 문장들이 주는 청신한 느낌이 참 기분 좋게 낯설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그녀가 써놓은 문장은 젊고 생생하였다.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곡진한 그리움, 그리고 여전히 펄펄 살아 움직이는 감성의 일렁임이 단어와 구절 마디마디에 담겨 있었다.

실상 김 여사는 수영에게 그저 한 아내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수영이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듯 토해놓는 작품 원고를 깔끔하게 정서하는 문학 비서였다. 끝까지 세속에 물들기를 저항한 수영에게는 이런저런 세상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이기도 했다.

김 여사는 젊은 시절 명동 최고의 멋쟁이 중 한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나름의 심미안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발문을 쓴 고은 시인은 김 여사 부부를 두고 "한국문학사에서 이 같은 고도의 문예미학의 넓이를 함께하는 부부는 이례적이었"(239쪽)다고 적고 있다.

김수영 시인은 서정주, 정지용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은 연구자를 거느리고 있는 현대 시인 중의 한 명이다. 실상은 이들을 훌쩍 뛰어넘는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한 평론가의 입에서 본격적인 '김수영학'이 펼쳐질 필요가 있다는 말까지 나올까.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김수영학에 관심을 두는 연구자들에게 정말 훌륭한 1차 연구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나는 시인의 아내다'(1장)와 '내가 읽은 김수영의 시'(2장), 그리고 '기억의 삽화들'(5장)에 있는 것들에 눈길을 줄 만하다. 책 중간 중간의 분홍색 간지에 실려 있는 사진 16장도 기존에 나온 김수영 관련 자료집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가장 많이 끈 대목은 2장이다. 2장에는 김 여사가 김수영의 시 21편을 대상으로 촌평한 글들이 묶여 있다. 촌평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작품 평가보다 시 창작과 관련된 일화를 중심으로 서술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대목의 내용은 연구자들이 해당 시의 창작 맥락을 이해하려고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글머리의 '토끼 띠' 운운 대목에 나오는 이야기도 실은 이곳의 '토끼'(1949)에 관한 글에서 알게 된 것들이다.

1960년 10월 6일, 김수영 시인은 아내 김현경 여사에게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써서 보여준다. 시인은 그 시를 보고 걱정을 하는 김 여사에게, 이 시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고발이라며 길게 말을 늘어놓는다.

이후 수영은 이 시를 '잠꼬대'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현대문학>에 보낸다. 하지만 이 잡지의 편집자는 작품을 되돌려 보낸다. '김일성만세'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그때로부터 50여 년이 다 되어가던 200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서였다.

1960년대에 '김일성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시인이 김수영이다. 부인 김현경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수영의 좌우명은 어느 불경에서 따 온 '상왕사심(常往死心)'이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엄혹한 1960년대에 수영이 '김일성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좌우명 덕분이었을까.

수영은 술이라도 한잔 마신 날이면, "시를 쓰는 일은 바로 인류를 위한 일이야. 나는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고 크게 외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느닷없이 머리를 빡빡 밀고 집에 들어설 때도 많았다고 한다. 문인들의 모임이나 기웃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관심을 두는 문학인들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시의 시대는 저물었다. 시를 읽거나 쓰는 일은 한갓 '고상한 속물(?)' 취향의 하나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인의 말이 죽비처럼 우리의 정신을 내리치는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어디를 봐도 시가 다시 발흥하고 문학이 힘을 얻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나는, 인류를 위해 시를 쓰고, 삭발로 스스로를 재촉하며, 속물 예술가를 질타했던 김수영 시인이 그리워진다. 이 시대의 '김수영'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내게는 김수영이 없는 지금 2013년의 대한민국이 우울하게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김수영의 연인 | 김현경 (지은이)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책읽는오두막(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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