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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지소로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 분과 장지로 떠나는 장례차량
 보건지소로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 분과 장지로 떠나는 장례차량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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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일년 내내 치근댈줄 알았던 여름이 갔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날씨가 11월이 지나니 확 추워졌다. 길가에 나뒹구는 나뭇잎. 아기가 엄마 젖에 달라붙듯이 가지에 찰싹 붙었던 이파리들이 힘이 다했다. 떨어져 내리는 것은 낙엽만은 아니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사람도 힘이 다 한다.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 나고 자라고 변화하고 거둬들이고 저장하는 사계절의 변화. 그 중에서 겨울. 자람을 멈추고 움츠러드는 시간. 끝을 맺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어느 월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 남양 마을에 내렸다.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정색 리무진. 뒤따르는 차량들. "그 양반이 돌아가셨나보구만." 같이 내린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남양마을에 사는 김삼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별이 또 다른 만남을 만든다. 아들만 다섯이라, 며느리 손자 손녀 합쳐서 대인원이 모였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넷째 아드님도 부랴부랴 내려왔다. 천수를 누려서 호상이란다. 슬픔을 그나마 줄이는 위안이다. 3일장 동안 사람들을 맞는다. 남겨진 가족은 하관(下棺)을 위해 사자(死者)를 모신다. 

고인이 장지(葬地)로 향하는 날, 누군가 다시 이승에 작별인사를 하였다. 기동마을에 사는 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호상이니 어쩌니 해도, 여러 목숨이 지는 모습이 마을에 그림자를 지운다. 고인이 땅으로 향하던 수요일, 또 남양 마을 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마을 이장의 형님이기도 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겼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젊어서 돌아가신 셈.

2년 먼저 떠난 아내가 남긴 아들 하나. 아직 중학생이라 충격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 된다. 인천에 사는 친척 집에 맡긴다는데, 한창 예민한 나이에 눈칫밥을 먹을 일이 아득하다.

한 마을만의 일이 아니다.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성두마을은 인구가 수백명인데, 올해들어 10여 명이 돌아가셨다. 사람이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다.

나로도에서 다시 만난 할머니... "커피 한 잔 하고 가, 그냥 가면 안 돼"

며칠 전 들렀던 나로도가 생각난다. 2년 동안 공보의로 근무했던 섬에 친한 형과 나들이를 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다 반가운 분을 만났다. 한방실에 자주 들르던 한섭방 할머니. 반가움과 씁쓸함이 교차한다. 잘 웃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엷어졌다. 몇달 사이에 얼굴이 파리하다. 날 만난 반가움에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보셨을게다. "주위 분들도 잘 지내시죠?"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으레 묻는 인사.

할머니에겐 언니가 있었다. 가끔씩 와서 묵묵히 침을 맞고 가던 한쌍엽 할머니. 6개월 전부터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나로도를 떠난 지 한두달 지났을 무렵이다. 남양면으로 근무지를 옮긴 결정이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느낌이다. 나이 때문에 여기저기 아파도 큰 병은 없던 분이었는데. 세월의 힘은 야속할 정도로 무섭다.

단짝 친구도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료실에 함께 들어서던 오귀방 할머니. 많이 맞아도 익숙하지 않은지, 침 맞을 때마다 '아이 머임마야'하고 외쳤다. 수고한다며 간식거리를 제일 많이 주시던 분. 3개월 전에 중풍에 걸리셨다. 읍내 병원에 입원했는데 더이상 친구를 못 알아본다.

"가자. 내 집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 그냥 가면 안 돼."

 나로도 바닷가 근처에서 활짝 웃음짓고 있는 한섭방 할머니
 나로도 바닷가 근처에서 활짝 웃음짓고 있는 한섭방 할머니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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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친구가 곁에 없는 한섭방 할머니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깔끔하지만 냉기가 감도는 방. 커피를 끓인다, 떡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과일을 내온다. 그러지 말라 해도 분주함은 가시지 않는다. 평소 안 먹던 커피까지 마시며, 할머니의 정을 온 몸으로 받았다. 폐만 끼치고 나서는 길.

"또 와. 알았지? 또 와."

원래 정 많은 성격에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까지 사무쳐 목소리는 조용한 부르짖음이다. 사람들이 떠난다.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어두컴컴한 저녁에 바람을 맞으며 밖을 바라본다. 빛 공해가 없는 시골 하늘엔 별빛이 찬란하다. 화려한 하늘 아랫마을은 드문드문 불이 꺼져 있다. 겨울이 한번씩 올 때마다 불은 하나씩 꺼져갈 것이다. 떠나는 이는 있지만 오는 이는 없는 시골마을. 매번 가로등이 커져 있는 마을입구는 누가 오길 바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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