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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도문에서 열린 '2011 연변의 여름, 중국두만강문화관광축제'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그 현장의 이야기를 몇 편으로 나누어 연변과 도문, 중국 쪽에서 본 백두산의 모습까지, 중국 속 한국에 관한 얘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기자 글>

 

절대 건널 수 없는 강

 

두만강문화관광축제의 메인스테이지는 바로 두만강변입니다. 그 강 바로 건너에는 북한의 국경도시 남양시입니다. 한반도 최북단 도시로 함경북도 온성군에 속합니다. 처음 두만강을 바라보았을 때 너무 작아서 놀랐습니다. 넓지 않은 강폭 너머로 북한의 건물들이 훤히 보이고, 강변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법한 이웃동네였습니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면 걸어서도 가로지를 수 있을 것 같은 그 크지도 않은 강을 우리는 절대 건널 수 없는, 아니 건너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문에서 본 두만강

중국인들은 동행증을 만들어서 북한으로 장사를 하러 가기도하고 북한의 동해 바다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워 휴가차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이 중국으로 일을 하기위해 오려면 3대를 조사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두만강의 상류에는 물이 얕아져 사실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곳이 있는데 북한사람들은 그곳에서 많이 탈북을 하고 중국 군인들은 눈감아주기도 한다는 군요. 중국과 북한은 형제의 나라로 지냈는데, 작년에 중국군인과 북한군의 총격이 일어나 중국군인 한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중국어로 '중조변경선' 즉 국경선의 분위기가 조금 삼엄해 졌다고 합니다.

 

 도문에서 본 두만강과 그 너머의 남양시

 

중조변경선 너머의 북한군

 

두만강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이 있습니다.  작은 배는 강을 작게 한 바퀴 돕니다. 상류로 올라갔다 하류로 내려올 때는 강 중심의 변경선 너머의 북한쪽으로 붙어서 내려오게 되는데 어찌 보면 잠깐 월북을 한 셈이 됩니다.

▲ 두만강의 유람선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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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미터씩 참호를 파고 북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그곳에서 군인의 그림자를 잠시 보았습니다. 작은 유람뗏목을 조금만 돌리면 갈수 있는 강의 반대쪽 그곳을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생경함과 이질감은 사실 상심한 마음의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두만강의 유람선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투먼대교가 있습니다. 무역하는 차량들이나, 중국인들이 통행증을 받으면 그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가곤 한답니다. 

 

▲ 투먼대교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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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따로 요금을 지불하고 중조변경선까지만 가볼 수 있습니다. 다리의 교각 색깔도 변경선을 중심으로 중국은 빨간색, 북한은 파란색입니다. 변경선에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건너 건물들은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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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리

투먼대교에서 마주보이는 남양시의 일부건물들은 전시용 건물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꼭꼭 감싸두고, 지구촌이 된 이 세계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변경선 근처에서 사진을 찍던 중국 아이가 변경선 너머 북한 쪽으로 넘어가서 사진을 찍는데 그 순간 저 멀리 북한군인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쪽을 바라보며 조금씩 다가오는 북한 군인들을 보는 순간 머리가 텅 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을 바라보며 느꼈던 이질감이나 안타까움은 북한에 우리 민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북한이라 함은 우리가 발 딛을 수 없는, 뉴스에서만 봐온 막연한 국가의 커다란 이미지로만 받아들였는데 그 군인들을 보는 순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감이 되살아났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몇 발짝 떼지 않고 금방 되돌아갔지만 변경선에서 바라본 북한군인들의 모습을 나의 뇌는 공포로 인식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보면서 느낀 충격과 공포가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 하여 슬퍼졌습니다.

 

 중조변경선

 

17만원으로 5년을 산다?

 

우리가 자주 가던 조선족 양꼬치집 아저씨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친척이 북에 계신데 먹고사는 게 힘들어 가끔 편지가 오곤 했답니다. 그러면 사장님은 먹을거리와 돈을 들고 북으로 가는데 돌아오면 다른 가족들에게 계속 연락이 오곤 하여 이제를 발길을 끊었다고 하셨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일을 못하고 할 줄 모른다며 슬쩍 이야기 하셨습니다.

 

 조선족 양꼬치집 아저씨는 이제 북한의 인척을 찾아가는 일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들의 도움 요청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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