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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도문에서 열린 '2011 연변의 여름, 중국두만강문화관광축제'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그 현장의 이야기를 몇 편으로 나누어 연변과 도문, 중국 쪽에서 본 백두산의 모습까지, 중국 속 한국에 관한 얘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기자 글>

도문에 밤늦게 도착한날 숙소주인 아주머니는 조선족분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언어가 통하니 역시 이곳은 조선족 분들이 많아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간 숙소 밖에선 모든 상점들과 현수막들이 중국어와 한글이 병기되어있어서 당연히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알겠거니,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슈퍼에 들어가 물과 목캔디를 들고 '얼마예요?' 물으니 돌아오는 건 폭풍 중국어! 아무리 한국어,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중국어뿐 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가게를 들어가 봤지만 모두 중국 분들이었습니다.

 도문의 가판은 대부분 한글과 중국어가 병기되어있습니다.
 도문의 가판은 대부분 한글과 중국어가 병기되어있습니다.
ⓒ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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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봉사활동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조선족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이곳의 50%가 조선족 50%가 한족이라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얼마 후 제가 들어간 다른 슈퍼에서 조선족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니하오' 라고 인사하고 들어간 후 의사소통이 힘들어 한국말을 뱉으니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고 여쭤오셨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네!' 하고 대답하니 조선족 분이셨습니다. 반가워하시며 어디 학생인지 어디서 사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용산 근처에 산다고 하니 예전에 아주머니도 용산 근처에 잠시 살았었다고 하시며 반가워 하셨습니다. 세계는 지금 지구촌이라 불리 울 만큼 작아지고 세계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놀랍지 않지만 한때 근처에 살았던 한민족인 조선족 아주머니를 중국의 동족 끝 두만강 옆 도문에서 만났다는 것이 오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중국말이 아닌 조선족 언어를 사용해서 이었을까요?

좀 더 도문을 돌아보니 대부분 식당의 종업원들 중 한두 명은 조선족이었고 조선족들이 하는 상점도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할 줄 아니 대화를 할 때 중국어가 많이 들리는 것뿐 조선족들도 많았습니다.

. 한옥은 이곳이 중국인지를 의심케합니다.
▲ . 한옥은 이곳이 중국인지를 의심케합니다.
ⓒ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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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공연을 도와준 조선족 2세 자원봉사자들과 워크숍을 함께 했던 연변 대학교 학생들도 어려서부터 조선족말을 계속 사용하였고 조선족 학교에서도 조선족말과 중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수업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헷갈리는 단어가 생기면 중국어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등 중국어가 조금은 더 편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와의 만남이 조금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유독 친하게 지내며  도움도 많이 받고 같이 시내도 다녔던 금강이는 꼭 한국에 유랑을 오고 싶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우리팀 공연이 끝나고 다른 공연을 보러갔을 때 대사가 중국어인데 자막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을 때 뒷좌석에 있는 꼬마아이가 친구에게 한국말로 대사를 통역해주는걸 귀동냥으로 들으며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습니다. 몰래몰래 듣다 답답해진 우리는 아이에게 우리에게도 얘기해줘 라고 고백한 후 아이와 함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그 아이는 한국에 살다가 도문으로 온 지 3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들. 복잡해진 관계는 언제쯤 풀리고 좀 더 깊이 서로를 알고 짙은 사랑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질까요?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들. 복잡해진 관계는 언제쯤 풀리고 좀 더 깊이 서로를 알고 짙은 사랑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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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학생들 중 몇몇은 저녁마다 양꼬치를 즐겼습니다. 입맛에 맞는지  질리지도 않고 열심히 먹었지요. 몇 번 갔던 양꼬치집의 사장님은 조선족이셨습니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그 분과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장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연변 쪽으로 오셔서 살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중국의 여러 곳곳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셨고 한국에서도 잠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한국에 돈을 벌기위해 혹은 장사하러갔던 조선족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사기당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조선족들에게 도와주겠다고 다가와 사기를 치고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악착을 떨며 모은 돈을 잃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온다고, 사장님도 그래서 이젠 한국에는 갈 마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뉴스나 다큐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곳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더욱더 안타깝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서로를 이해해주며 감싸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조선족들이 만난 모든 한국인들이 돈 버는 방식은 그것 뿐이었던 걸까요?

중국 땅은 정말 넓고 인구도 많습니다. 조선족들은 두 명까지 자녀 출산이 가능하지만 한족의 경우, 정부의 한자녀 정책으로 호적에 올라와있지 않은 중국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온 탈북자들은 그냥 살아간다고 합니다. 큰 사고, 사건만 일어나지 않으면 신분증이 없어도 밥은 굶지 않고 살아갈 만하다는 것입니다.

신분이 없는 여자들은 호적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면 신분이 생기고 남자들은 돈을 많이 벌어 신분을 사는 것입니다. 신분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어디를 가나 있습니다. 또 그들도 자신들만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민족이 이곳 중국에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인식도 없이 통일을 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쌍둥이 아들을 둔 조선족 어머니
 쌍둥이 아들을 둔 조선족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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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들.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금방 친해지고 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니까요. 복잡해진 관계는 언제쯤 풀리고 좀 더 깊이 서로를 알고 짙은 사랑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질까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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