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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가 채 두 달을 다니지 못한 대학에 그의 후배로 입학하자마자, 나는 강경대 열사 4주기 추모제 열사정신계승단의 단원이 되어 처음 듣는 노래를 배우고, 어색한 율동을 하며 서울시내 대학을 돌아다녀야 했다.

 

친구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수능시험을 보고 점수에 맞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눈을 씻고 찾아 턱걸이로 합격했을 때만해도 그냥 대충 졸업장이나 따자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였다. 입학을 하고 대학이란 존재 자체를 우습게 여기던 때에, 생물학적으로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선배들의 우습지도 않은 훈계를 들으며 학생회실에서 새우깡 안주에 소주 몇 병을 비우고 난 다음날 아침 나는 "강경대는 싸우고 있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부심이자 동시에 부담인 이름 석 자, 강경대

 

 4월 26일(화) 오후 7시 강경대가 절명했던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교정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그 이후, 옥살이 하던 3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추모제를 거른 적이 없었다. 난 강경대를 본 적도 없고, 그가 활동했던 동아리나, 학과의 후배도 아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강경대'라는 이름 석자는 내게 자부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이름이었다. 특히 1991년 열사들의 20주기가 되는 올해에는 강경대 열사 20주기를 시작으로, 박승희 열사, 김귀정 열사 등의 추모행사가 준비 중에 있고 합동 추모제와 학술 토론회도 준비되고 있기에 시작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특히 올해 20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하면서 '강경대는 싸우고 있다'는 문구는 늘 내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추모제를 하고 있는가?", "과연 현실의 강경대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강경대는 왜 싸우며, 그와 어깨를 걸고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아직도 오지 않은 학원의 자주화를 위해, 학생이 주인 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는 통일평화운동가들, 파견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의 수식어를 이름표 대신 달고 자본에 모든 것을 빼앗기며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빼앗기고 쫓겨나서 세상에 호소하면 감옥에 가야하는 이 땅의 가난한 이들.

 

강경대 열사가 2011년을 살고 있다면 이들의 곁에서, 이들의 편이 되어 싸우고 있지 않을까? 열사는 미군기지 확장으로 내쫓기는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 곁에, 살기위해 올라갔다 주검으로 돌아온 용산참사 철거민들 곁에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곡기를 끊기도 하고, 타워크레인 위에서, 옥쇄파업 도장공장 안에서 노동기본권과 생존권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1991년 강경대(4월26일)/김영균(5월2일)/천세용(5월3일)/박창수(5월6일)/김기설(5월8일)/윤용하(5월12일)/이정순(5월18일)/박승희(5월19일)/김귀정(5월25일)/정상순(5월31일)/김철수(6월2일)/손석용(8월19일) 이렇게 많은 열사들이 세상을 향해 호소하며 목숨을 내걸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열사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고 먼저 가셨다. 그러나 열사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세운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너무나도 허약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 3년 만에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고, 눈감고, 귀닫고 살면 역사는 너무 쉽게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91년 12명의 열사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수많은 열사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고 먼저 가셨다

그렇다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우리들이 1991년 열사들의 20주기를 맞아 다시 거리를 뛰며 팔뚝질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1991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고 누가 무엇을 했는가를 기억해 내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뜨거웠던 지난날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의 목숨을 딛고 성장시켜온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토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다.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작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는 그런 소박한 이야기이다.

 

20년이 지나고 나니, 세상은 다시 강경대, 박승희, 김귀정을 불러 우리 옆자리에 앉히고 있다. 강경대 열사 이후 앞으로 열한 번 더 있을 20주기'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잊혀질 이름일지언정, 세상이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닮아있는 1991년과 2011년, 대학생들은 세상에 절망하며 죽어가고 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비판하는 국민들을 억압하고 무시한다.

 

 추모문화제에서는 3년에 걸쳐 제작된 강경대 평전이 헌정되고 백기완 선생이 추도사를 하며 가수 안치환이 91년을 노래한다.

20년의 세월이 역사의 구비를 돌고 돌았지만 다시 제자리인 듯한 지금, 우리가 잊고 살았을지 모를 열사들을 다시 기억하게 될 2011년 4월과 5월은 내년, 2012년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하루 하루가 될 것 같다.

 

4월 26일(화) 저녁 7시 강경대가 절명했던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교정에서 그 첫 하루가 시작된다. 추모문화제에서는 3년에 걸쳐 제작된 강경대 평전이 헌정되고 백기완 선생이 추도사를 하며 가수 안치환이 91년을 노래한다.

 

1991년 당시 모든 장례식에서 집행위원장을 도맡아하며 투쟁에 앞장 섰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강경대 열사 20주기를 맞아 새로 지은 추도시에 명지대 동문들이 곡을 부쳐 노래하고 경대친구 91학번들이 강경대 열사가 가장 좋아했다는 '투쟁의 한길로' 대합창을 한다. 함께 하시면 좋겠지만, 어려우시면 마음이라도 이곳으로 보내주시라. 


그날 저녁노을도 저렇게 붉었네

이 수 호

(1991년 당시 강경대열사 범국민장 집행위원장, 前 민주노총 위원장)

 

 

싱싱한 봄날

맑은 바람 지나는 담벼락길

착한 백목련 흐드러지고

와 -

한 떼의 개나리꽃 같은

민자당 일당 독재 분쇄!

민중 생존권 쟁취!

학원 자주화 확립!

담쟁이처럼 일제히 기어오르는

4월의 빛나는 외침

민주국가 건설의 새내기들 함성

 

 

그날

저녁노을이 붉게 내리는 시간

탄압의 쇠파이프, 억압의 각목에

고운 꽃잎 하나 떨어지며

불붙기 시작했네

독재에 대한 순결한 항거

공안탄압에 대한 눈부신 저항

울려 퍼지기 시작했네

너울너울 파도처럼

춤추기 시작했네

순수했기에 아름다웠고

아름다웠기에 거침없었다

빛나는 청년학도 노동자들

거리거리 앞다투어 물결을 이루고

민중의 분노 화산처럼 피어올라

붉은 저녁노을 되어 하늘을 뒤덮고

거센 바람 일으켜 전국을 휩쓸었다

이제야 끝장내리라

독재의 사슬을 끊으리라

민중정부 세우리라

두 주먹 불끈 쥐고

가슴가슴 하나였다

 

또 다시 노을이 내리고

그날 그때처럼 하늘이 붉게 물들고

별빛으로 밝아오는 꽃잎 하나

고운 꿈 되어

살아남은 우리 마음속에 피어나네

노나메기 해방세상 만들려고

저기서 힘차게 달려오네

참 순결한 영혼

강 경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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