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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비는 한두 방울만 남긴 채 사라졌다. 대신 바람이 왔다. 섬에서는 '비 한 줌이면 바람 한 섬'이라는 말이 있다. 울릉도도 그랬다. 우산이 뒤집히기를 몇 번, 끝내 우산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떨어지는 비야 견딜 수 있었지만 카메라 렌즈에 부딪히는 비는 연신 닦아내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남양마을에서 도보여행은 시작되었다.
 남양마을에서 도보여행은 시작되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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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에서 버스로 남양까지 왔다. 배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어 걷기로 했다. 울릉도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남양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남서터널 옆 사자바위에서 도보여행은 시작되었다. 투구 모양을 한 남양마을 뒷산에는 옛 우산국의 전설이 전해져온다.

 사자바위(왼쪽 끝)와 투구봉(오른쪽 높이 솟은 산)
 사자바위(왼쪽 끝)와 투구봉(오른쪽 높이 솟은 산)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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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 토벌을 하기 위해 군선의 뱃머리에 목사자를 싣고 와서 몰살시키겠다고 위협하자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그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가 되었고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투구봉이 되었다고 한다.

 국수산의 주상절리현상
 국수산의 주상절리현상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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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을 따라 열을 지은 마을 뒤로 가니 국수산이 보인다. 비파산이라고도 불리는 국수산은 주상절리 현상으로 산 한쪽 면이 국수 혹은 비파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우산국의 왕비 풍미녀가 딸 하나를 남기고 죽자 우해왕이 이를 슬퍼하여 뒷산에 병풍을 치고 백일 제사를 지내며 대마도에서 데려온 열두 시녀에게 매일 비파를 뜯게 하였다고 하여 산 이름이 비파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양마을에서 통구미 가는 길에서 본 어선 한 척
 남양마을에서 통구미 가는 길에서 본 어선 한 척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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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바다는 검게 변했다. 바람이 심하게 부니 배 한척이 서둘러 항구로 향했다. 허연 배설물을 방파제에 남긴 괭이갈매기도 멀리 날지 못하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괭이갈매기
 괭이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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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운무에 쌓인 앞의 풍경을 보기에도 시간은 부족할 터,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카메라에 담길 풍경은 느린 걸음 속에 채워질 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남양마을 전경
 남양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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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구미까지는 2.5km.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걷는다. 터널이다. 울릉도의 터널에는 육지와는 달리 신호등이 있다. 워낙 가파른 지형에다 해안에는 절벽이 대부분이여서 터널을 뚫지 않을 수 없다. 터널을 뚫더라도 길이 좁기는 매한가지다.

 남양에서 본 통구미 방면
 남양에서 본 통구미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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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불을 기다려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터널 안은 의외로 공포스러웠다. 차들이 내는 소음이 귀청을 때리는 순간 귀를 틀어막았다. 가끔씩 뒤를 힐끔힐끔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울릉도의 터널에는 험한 지형으로 인해 신호등이 있다.
 울릉도의 터널에는 험한 지형으로 인해 신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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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터널은 섬목의 관선터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면권에 있다. 울릉터널에서 시작되는 터널은 가두봉, 통구미, 남통, 남양, 남서, 구암, 사태감, 곰바위, 수층, 산막을 지나 태하터널에서 끝이 난다. 그중 신호등이 있는 곳은 남양, 남통, 통구미구간이다.

세 개의 터널을 벗어나니 통구미마을이 나왔다. 윗통구미와 아랫통구미로 나뉘는 통구미마을은 홈통처럼 생긴 마을로 바다거북이가 기어들어가는 형상의 바위가 있어 통구미라 불리게 되었다.

거북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 위에는 보는 방향에 따라 거북이 6~9마리 정도가 보인다고 한다. 여행자의 눈에는 세 마리만 보였다.

 통구미 향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48호)
 통구미 향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48호)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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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건너편은 태하의 대풍감과 더불어 향나무자생지로 유명하다.(천연기념물 제48, 49호) 예전 울릉도에서 자라는 향나무는 2~3년에 한 번씩 파견된 관리들이 조정에 올려 보냈던 토산물이었다. 굵은 향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의 벌목으로 거의 사라졌다.

 통구미 거북바위
 통구미 거북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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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고 있는데 때마침 버스가 왔다. 기사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울릉도 여행 첫날에 여행자 홀로 탄 마을버스를 운전하던 그분이었다. 비와 땀에 젖은 여행자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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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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