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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나 내일 프로젝트 결과 나오는 날이야."
"프로젝트 뭘로 선택했는데?" 

"옷살림. 근데 옷살림에 우리 6학년 여자애들이 두 명 빼고 다 들어갔어. 그래서 잘릴지도 몰라."
"그럼 어떡해? 딴 프로젝트는 어때?"

"싫어. 난 집살림, 밥살림 체험했을 때 맘에 안들었어. 옷살림 하고 싶어."
"해주야. 만약에 옷살림이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마. 딴 것도 분명히 재밌을 거야." 

"그래도 난 꼭 옷살림할 거야. 1지망, 2지망, 3지망 다 옷살림으로 했어."

 밥살림 프로젝트 수업일정
 밥살림 프로젝트 수업일정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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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수업결과 발표가 있기 전날 해주는 무척 긴장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수업으로 가지 못할까봐 한 걱정하더라구요. 왜냐면 프로젝트라는 게 몇 달 하다가 다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번 정해지면 일 년을 꼬박 해야 하니 아이로서는 긴장도 될 겁니다.

"엄마. 나 밥살림 했어."
"왜? 너 옷살림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밥살림으로 내가 갔어."
"너 농사짓는 거 싫다며? 샘들이 밥살림으로 가래?"

"아니. 애들이 아무도 양보를 안해서 할 수 없이 내가 양보했어."
"그래...(제가 약간 섭섭합니다.) 너 좀 속상하겠다." 

"응. 하는 수 없지 뭐. 그리고 나 풍물도 양보했어."
"풍물을 왜 양보해? 올해는 풍물 꼭 한댔잖아?"

"나도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아이들이 아무도 영어로 안가잖아. 어떡해. 내가 가야지."
"왜 너만 가냐? 옷살림도 양보했잖아..."(제가 프로젝트에 이어 풍물까지 양보했다는 소리에 약간 흥분을 합니다.)

"그리고 있잖아. 나 과학도 양보했어."
"뭐? 과학까지?"(이 말에 짜증이 확 일어납니다.) 

"응. 애들이 절대 무용으로 안 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갔어."
"야! 너는 양보만 하냐? 아니 프로젝트도 양보해, 풍물도 양보해, 과학까지 양보해? 너 그래놓고 학교 재미없다고 할 거지?"

"왜 화를 내? 나라고 과학을 양보하고 싶었겠어? 내가 과학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런데 엄마가 양보하고 살라며? 그리고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하잖아. 그래서 내가 양보한 건데 잘못이야?"

헉. 해주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제가 평상시 아이들한테 양보하라고 가르쳐놓고는 이제 와서 왜 다 양보했느냐고 아이를 다그치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칭찬받을 줄 알았던 딸이 오히려 혼났으니... 곧바로 딸에게 엄마가 잘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제 마음 수준을 확연히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방학, 이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해주 방학 숙제 중에 자기 학년 아이들과 만나 노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학이 다 끝나도록 아무도 모이자고 하는 아이가 없으니 해주는 숙제를 못할까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충고를 했습니다.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니가 먼저 나서서 아이들을 모아라'고요. 이때 제 마음의 핵심은 딸에게 리더십을 발휘해라, 였습니다.

 방학숙제를 위해 전화를 돌리는 딸
 방학숙제를 위해 전화를 돌리는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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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니? 우리 방학 숙제로 모여야 되잖아? 언제 보는 게 좋을까? 그래? 그럼 다시 전화할게."
"규인이니? 넌 그 날 어때? 어, 그럼 내가 다시 전화해보고 또 전화할게."
"......"
"......"

딸의 통화내용을 유심히 듣다가 물었습니다.

"니가 또 다시 전화해야 되니?"
"어, 누구는 이 날이 되고, 누구는 이 날이 안되고, 다 맞추기가 쉽지 않네. 그래서 다시 연락해주기로 했어."

"아니, 니가 한번 전화했으면 됐지. 시간이 안되면 지네들이 되는 날이 언제라고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야? 또 니가 해야 돼?"

제 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묻어나니 해주는 당황해 합니다. '아니 언제는 나서서 하라더니 뭐야?' 이런 표정입니다. 그때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평상시에는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손해 볼 일 있으면 너희가 보라고 가르쳐놓고 정작 아이가 지나치게 양보한다 싶으니까 그렇게까지는 안했으면 하는 겁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지도하는 리더가 되라고 했지, 심부름 하는 리더가 되라는 건 아니었던 게지요. 저 정말 웃기죠? 그런 제 모습을 보는데 참 재밌었습니다. 뭐 제가 대단한 척, 남을 위하는 척 했지만 실은 아주 저 깊은 밑마음에는 손해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챕니다.

창피하냐구요? 글쎄요. 별로 창피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다 그렇지, 저만 그렇겠습니까.^^ 다만 그런 저를 알아차렸으니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야지요. 남의 눈에 티끌은 쉽게 봐도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본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딸들아, 오늘도 양보하는 그 한 사람이 되라.  
엄마는 그때 일어나는 마음을 한번 더 들여다 보마~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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