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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철 전 비서관의 폭로 배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용철 전 비서관의 폭로 배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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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도 이런 편집증이 없다. <조선일보> 어제(20일) 사설이 그렇다. 그 사설 제목은 '삼성 현금 다발,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에게만 갔나'였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삼성 불법규명 국민운동' 측의 기자회견 내용을 인용해 "삼성이 법무비서관 한 사람에게만 돈을 줬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이 반부패 제도 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비서관에게 태연스레 돈을 건넬 정도라면 다른 비서관, 수석들에게는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의혹이다. 어제 이 문제로 사설을 쓴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모두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경향>과 <한겨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상대로 이런 금품 공세가 있었을 진데, 다른 권력기관인들 삼성의 금품 로비 공세에서 예외였겠느냐며 삼성의 전방위 로비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들 신문들과는 다르다. 그 취지가 다르고, 맥락이 다르다. 사설의 논지 또한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말의 진정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 삼성 앞에서만 '무딘' 그들의 칼날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줄곧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로비 의혹에 대해 그동안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김용철 변호사 인터뷰를 비롯해 그의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삼성의 해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달랐다. 사설도 쓰고, 기사도 게재했지만 어디까지나 '비평가' 수준이었다. 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발표한 이후 처음 쓴 <조선일보> 사설은 '삼성의 이상한 비자금 이야기'다. 삼성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삼성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점잖게 주문했다.

지난 11월 5일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실태를 낱낱이 폭로하자 <조선일보>는 김 변호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물증'을 제시해 검증받을 것을 요구했다.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삼성 쪽에 대해선 도대체 날이 서지 않았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삼성의 주장과 해명이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면서도 정작 <조선일보>가 삼성에 요구한 것은 "좀 더 당당한 대응자세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뭘 말하려는지 좀체 알 수 없는 '헛갈리는 사설'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화를위한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을 열어, 청와대 재직때인 2004년 1월 삼성이 보낸 돈다발을 되돌려준 과정 등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화를위한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을 열어, 청와대 재직때인 2004년 1월 삼성이 보낸 돈다발을 되돌려준 과정 등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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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검찰이 특별수사본부와 특별감찰본부를 만들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찰의 특별수사본부나 특별감찰본부가 과연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을까? 아니다. 엉뚱하게 그 화살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사제단을 향했다.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자료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말이 '촉구'지 사실상 '압박'이다.

삼성에 대해서는 "한국 최고 기업, 글로벌 기업다운 대응 수준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검찰에 대한 '주문'은 빠졌다. 검찰에게 이번에야말로 똑바로 제대로 수사하라는 촉구라도 하는 것이 도리일 터인데, 그런 말은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자고 쓴 사설인지 좀체 알 수 없는 '헛갈리는 사설'이었다.

왜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사설을 썼을까? 원래부터 논리도, 앞뒤도 없는 논설위원이 써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써야 돼서 쓰긴 했지만, 이것저것 피하려다 보니까 이 같은 '누더기 사설'이 됐던 것일까?

합리적 의심 수준 넘어선 <조선>의 청와대 비호 의혹

그런 <조선일보>가 어제 사설에서는 날 선 칼을 마구 휘둘렀다.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왜 지금에 와서야 사실을 폭로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반부패 담당 비서관에게도 삼성 돈이 전달됐다면 다른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어떠했겠느냐"고 묻고 "사건이 청와대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예민한 후각'을 발동시켰다.

어쨌든 <조선일보>가 청와대 다른 비서관들에게  삼성의 금품 공세가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하는 것 까지는 뭐라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용철 변호사가 이를 그동안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청와대를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는 '합리적인 의심'의 수준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사건이 청와대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면 이용철 변호사가 이제 이를 폭로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용철 변호사의 생각이 그 때와 달라졌다고 보는 것인가? 이용철 변호사가 이를 폭로하면서 "하물며 청와대 법무비서관인 자신에게까지 서슴없이 돈봉투를 배달할 정도면 오죽했겠느냐"고 말한 것에 청와대 비호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것도 좋다. 이런 의심을 가졌다면 <조선일보>는 적어도 어제(20일) 이용철 변호사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에 대해 밝힌 '심경'에 주목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 변호사의 심경이나 공개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삼성 이건희 불법규명 국민운동'은 19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전 청와대 비서관인 이용철 변호사를 상대로 한 삼성의 뇌물제공 시도 경위와 돈다발 사진을 공개했다.
 '삼성 이건희 불법규명 국민운동'은 19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전 청와대 비서관인 이용철 변호사를 상대로 한 삼성의 뇌물제공 시도 경위와 돈다발 사진을 공개했다.
ⓒ 참여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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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변호사는 어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에게 전달됐던 현금 500만원이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였던 이경훈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보낸 것일 거라는 삼성 측의 해명을 낱낱이 반박했다. 이용철 변호사는 또 <조선일보>의 궁금증에 답하기라도 한 듯 자신이 이를 뒤늦게 공개하게 된 배경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미안함 때문이라고 했다. "김용철 변호사 관련 뉴스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쌓였고, 지난 15일 민변 동료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뭐 받은 것 있으면 고백하라'라는 농담조의 이야기들을 들은 다음 공개하기로 결심하고 당시 찍어두었던 '돈다발' 사진들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당시는 거대한 삼성을 상대로 싸울 엄두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처음 폭로했을 때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가 폭로한 내용과 자신이 겪었던 일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명색이 반부패제도 개혁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 제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말 또한 믿지 않기로 하면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이용철 변호사가 도대체 왜 그동안 침묵했는지 궁금해 하고, 청와대 비호 의혹까지 제기했던 <조선일보>라면 적어도 이용철 변호사가 밝힌 이런 공개 배경이나 심경에 대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청와대'만 나오면 기막힌 상상력 발휘하는 <조선>

하지만 <조선일보>는 그러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오늘(21일) 이용철 변호사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사회면에 싣기는 했다. 이경훈 당시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 개인적인 뇌물이라는 삼성 측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한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다. 그러나지만, 이용철 변호사가 왜 이를 공개하게 됐는지 그 경위와 심경을 밝힌 것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떡값을 받았다고 폭로한 검찰 수뇌부에 대해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서, 또 삼성 떡값을 받았을지 모를 언론인 자신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데 '청와대' 이야기가 나오자 기가 막힌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렵사리 자신의 사례를 공개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조금은 성의껏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더구나 자신들이 제기했던 의구심에 대한 '답변'도 있었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러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팽개쳤다. 정말 미안함이란 모르는 신문이다. 부끄러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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