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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0.17 18:41 수정 2019.10.17 18:41

지난 1월 15일 노르망디 시장들과 사회적 대토론을 나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AP


지난 달, 마크롱의 지지율이 36%를 찍었다. 누군가에겐 가슴 철렁한 지지율이겠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노란조끼의 전국적 봉기로 결정타를 입은 마크롱으로서는 감격스런 고지가 아닐 수 없다.

당시에 비하면 11%p 상승했고, 차곡차곡 1%p씩 쌓아올렸다. 여전히 절반이 훌쩍 넘는 프랑스인들이 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지만, 지난 1년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달리며 끝없는 개혁에 도전했다. 지난 2년간 여러 단계에 걸쳐, 대대적 개혁을 시도한 실업보험의 변신은 눈여겨 볼 만한 구석들이 적지 않다.  
 
노동자는 분담금 안 낸다
 
프랑스의 고용보험 제도는 1958년 드골정부에서부터 출범했다. 그동안은 상공인협회와 노조 측이 동수로 구성된 테이블에 앉아 3년마다 제도의 틀을 논의하며 운영해온 노사간의 제도였다. 정부는 이들의 협약 테이블에서 조언자, 혹은 소극적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개편되어 온 마크롱 실업보험 개혁 안의 첫 번째 특징은, 정부의 역할이 조언자에서 주도적인 위치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이 분담해 왔던 2.4%의 고용보험료를 없애고(2018.10) 사측만 보험 분담금을 내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그 뒤에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충분히 읽혔다 해도,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개혁안을 노조 측이 거부하긴 쉽지 않았다. 고용보험금고는 이미 적자에 허덕였다. 여기서 이제는 노동자가 분담해 오던 부분을 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한다. 동시에 정부는 실업보험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고, 보험 제도를 정부 주도로 전면 개편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폐업한 자영업자에게도 실업수당 지급

세계적 흐름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노동시장에서도 단기 고용형태가 최근 급속히 증가했다. 2015년 전체 노동자 중 정규직이 85%를 차지했으나, 이후 새로 고용된 노동자의 87%는 단기직이었다. 이 통계는 급변하는 노동시장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는 비단 사측의 이해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자 자신의 요구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좋은 이력을 가진 장래 유망한 청년들이, 뼈를 묻을 평생 직장을 더 이상 찾지 않는 게 트렌드라고 말한다. 길어야 2~3년, 한 직장에서 근무한 후 또다른 경험과 모험을 찾아 새로운 직업이나 직장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 입장에선 달가운 일이 전혀 아니었다.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은, 고용보험금고를 적자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업이 개인에게 닥친 극단적 상황이 아니고, 때로는 자발적이기까지 한 일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정부는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적자를 줄이면서도, 실업보험 제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안이다.  
 
실업급여 개혁의 근간을 이루는 "직업적 미래 선택의 자유법" 속에 그 변화된 패러다임이 담겨 있다. 정부가 실업 상태의 노동자를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역할 말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는 데 적극적 동반자가 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구직 활동 지원에 대한 질을 높이고, 직업교육을 위한 제도 설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자발적 실업자와 자영업자를 실업급여 수급자의 대상으로 포섭하면서, 그들의 창업이나 직업 전환을 지원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실직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 결과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면 재창업 혹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버틸 수 있도록 6개월 간 800유로(약 104만 원)을 지급한다. 재취업과 재창업을 위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단 폐업하기 직전 최근 2년간 최소 1만 유로(약 1300만 원)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다. 위장 폐업하여 수당을 부당수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분담금을 낸 사람에게만 돌아가던 실업급여 수당이, 정부가 노동자 몫을 대신 부담하면서 노동자·자영업자 구분 없는 보편적 복지의 영역이 된 셈이다.  

'자발적' 퇴사자도 실업수당
 
이번 개혁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파격은 자발적 실업자의 포섭이다. 새로운 직업으로의 도약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으로의 인식 전환을 담은, "직업적 미래 선택의 자유법"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업이나, 새로운 직업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실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해고되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실업급여를 지급할 것을 허락한다(2019년 11월부터).

다만 이러한 제도 변경이 갑작스런 다수의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우선 5년 이상의 장기 근무자(제도 실행 이후 현실에 맞게 조정될 여지가 있음)가 대상이며 다음 직업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계획서가 심의를 통과하면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거나 창업을 위한 전문가 자문, 창업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부부 중 한 사람이 근무지를 이동하게 됨에 따라 동반하여 이직을 하는 경우도 자발적 이직자로 분류되어 실업보험 대상이 된다.  

또한 단기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업수당 책정을 월별이 아닌 일별로 계산하는 방식이 도입된 반면, 월 4500유로(약 591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 실업수당은 첫 7개월 이후부턴 30%씩 감액 조정했다. 단기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정, 고소득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정이 이뤄진 셈이다.
  
단기고용 남용하는 기업엔 벌점
 
기업주의 단기고용 남용을 막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확대하기 위해 사업주를 대상으로 '보너스와 벌점' 제도를 만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동종 업종에 비해 단기 고용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는 기업에게는 벌점을, 장기 고용이 평균치보다 많은 기업에게는 보너스를 적용해 차등적으로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제도에 대한 기업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우선 단기고용이 집중되어 있는 7개 업계(서비스업, 식당, 호텔업 등)부터 적용하되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협의가 이뤄진 상태다. 정부 입장에선 실업급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동시에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 확대를 유도하는 두 가지 목적을 이 정책을 통해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평생 교육을 위한 개인교육계좌 CPA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재교육을 원하는 시기에 쉽게 받을 수 있도록 개인교육계좌도 생겨났다. 16세 이상의 모든 임금 노동자에게 개설되는 이 계좌는 정부가 만든 사이트에 들어가 개인의 건강보험카드 번호를 입력하면, 그동안 자신이 여러 직장에서 일하면서 축적한 직업교육 시간, 금액으로 환산된 사용 가능한 직업교육 비용이 나온다.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 교육의 장르를 입력하면, 제공받을 수 있는 정부 공인 교육기관 리스트와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상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개별 구좌에 축적된 금액으로 바로 웹상에서 결제 가능하다. 

풀타임 장기 노동자의 경우 연 24시간, 5년 동안 120시간이 적립된다. 이 계좌에 쌓이는 포인트는 은퇴 전까지, 이직을 할 경우에도 계속 누적되며, 유급휴가로 환원시켜 사용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저축된 시간만큼 은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구직자의 의무 조항 확대
 
진입장벽이 높아진 것은 노동자들이 이번 개혁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표하는 대목이다. 기존 제도는 최근 2년 안에 4개월 이상 일한 사람이 실업급여 신청 대상이었지만 이번에는 6개월 이상 일한 사람으로 기준이 상향됐다.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직업을 2회에 한하여 거부할 수 있지만, 세 번째는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고려치 않은 장치라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정부는 최대 2년 동안(55세 이상은 3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구직활동에는 소극적이었던 수급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고 반박한다. 
 
1%를 당기려는 팽팽한 줄다리기
 

지난 3월 16일 노란조끼 시위대가 개선문 앞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EPA

  
마크롱이 집권하던 2017년 5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9.5%였다. 집권 2년차인 지금, 실업률은 8.5%를 찍고 있다. 간신히 1%를 벌었다.

노란조끼 대열에서 가열차게 싸웠던 은퇴자들은 인상되었던 0.9%의 일반사회기여금을 그들의 눈부신 가두투쟁으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정부는 2.4%의 노동자 분담금을 줄여주는 대신, 그들에게 더 가열찬 구직과 직업교육을 요구한다.

마크롱 정부는 이번주 초에 그랑제꼴 지원자 중 장학생들(프랑스에서 장학생은 곧 저소득층 자녀를 뜻함)을 위한 가산점 제도의 골격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대학의 일반적인 장학생 비율은 37.6%다. 프랑스 엘리트 교육의 산실인 그랑제꼴에서 장학생의 비율(학교에 따라 7~19%)은 그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여, 그들의 그랑제꼴 입학 비율을 올려놓겠다는 것이 바로 정부의 계획이다.

이 같은 개혁안을 8개 그랑제꼴 학장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발표한 프레데릭 비달 고등교육부 장관은 "수월성에 반하는 사회적 다양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의거한 수월성"이라는 말로 이번 개혁안의 성격을 설명한다.

덜 가진 자들의 발 밑에 디딤돌 하나를 놓아주는 것으로 완성해 가는, 기회의 평등을 위한 노력을 우파 신자유주의자인 마크롱 정부도 한다. 노란조끼들의 격렬한 투쟁은 공허하게 거리에서 소진되지 않았고, 이렇게 조금씩 정책을 견인해 왔다. 마크롱 정권과 프랑스 국민들은 이렇게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1%씩 전진한다. 민주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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