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2
원고료주기
등록 2019.09.03 15:46 수정 2019.09.03 15:59
제주에 와서 술을 마셨다. 집을 나섰고 음식은 좋고 대화가 길어지다보니 과음하고 말았다. 마지막에 40도짜리 고소리술을 거푸 마신 게 타격이 컸다. 술에 취해 허둥지둥 숙소로 들어와 쓰러져 잠들었다. 새벽 3시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침대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칫솔질을 하고 다시 잠이 들어 아침을 맞았는데, 머릿속은 멍울들이 맺혀 있는 듯 먹먹했다.

속을 푸는 데는 물을 마시는 것이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처방이다. 알코올을 분해하려면, 내가 섭취한 알코올 량의 10배의 수분이 필요하다. 그래야 갈증을 줄이고, 몸이 편해질 수 있다. 내가 가진 숙취 해소 상식에 따라,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한껏 들이켰다. 그래도 속이 쉽게 위로되지 않았다. 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음식이 필요하다.

숙소 근처의 보말칼국수집을 찾아갔다. 해장을 하기 위해서다. 해장 문화는 폭음이 부른 반작용이다. 해장국은 숙취로 손실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주고, 메스꺼운 속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장을 풀어준다는 뜻에서 해장이라고 말하는가 싶은데, 해장의 본디 어원은 해정(解酲)으로 숙취를 풀어준다는 뜻이다.

메뉴판에는 보말칼국수, 톳성게칼국수, 보말죽이 있었다. 음식점 벽에는 방송에서 한 이야기라며, 보말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간 기능 보호 및 숙취 해소나 자양 강장에 좋고, 성게는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미량 들어있어 산후 조리를 돕고 알코올 해독 역할을 한다고 적어두었다.
 

보말죽과 보말해장국, 보말은 바다의 고동이라 불린다. ⓒ 막걸리학교

 
어젯밤 술의 동지가 적극 권하여 보말칼국수와 보말죽을 시켜 나눠서 맛보았다. 참기름 맛이 강했지만 칼국수의 국물과 보말죽의 부드러운 쌀알이 위장으로 밀려들자, 속이 편해졌고, 허리가 펴졌다.

수저로 국물 속의 보말을 건져 먹었다. 보말은 바다의 고동이라 쫄깃한 식감이 좋았다. 보말국은 충청도의 올갱이국이나 하동의 재첩국과 비슷한 해장 음식 계보에 든다고 볼 수 있겠다.

제주의 지인은 제주가 1인당 술 소비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나처럼 집 떠나와 여행하는 이가 많아서 일 거라 짐작된다. 제주의 대표 해장국집으로 미풍의 선지해장국, 모이세의 소고기 해장국, 은희네의 소고기 해장국을 꼽는다.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제주라서 선지해장국은 이해되지만, 소고기 해장국은 아무래도 외지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늘어난 음식 같다.

제주에는 해장국으로 삼을 만한 바다 식재료가 눈에 많이 띈다. 각재기국도 아침에 즐길 만하다. 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 방언이다. 당일 어판장에서 사온 각재기를 쓰면 비리지 않고, 얼갈이배추와 함께 끓이면 국물이 엷은 단맛이 돌고 시원하다.
 

고사리를 죽처럼 풀어낸 고사리해장국. ⓒ 막걸리학교

 
제주시의 고사리 해장국도 최근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려 고사리 해장국집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행여나 싶어 가보았지만, 줄이 길어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뒷약속에 쫓겨 근처의 또 다른 고사리 해장국집에 들어갔는데 먹을 만했다. 돼지고기를 얇게 채 썰고 고사리와 메밀 전분을 풀어 미음처럼 끓여낸 국이다. 뜨겁고 되직한 죽을 한 숟갈 먹으면 속이 위로가 된다.

해장국은 뜨거워야 제격이다. 이때 동원되는 그릇은 뚝배기다. 뚝배기 해장국은 한국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음식 언어다. 콩나물 해장국이나 선지 해장국도 뚝배기에 담긴다. 각재기 생선국도 뚝배기에 끓여져 나온다.

특히 생선국은 뚝배기에 담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뚝배기에 끓여져 나와야 한다. 생선은 식으면 비린내가 나는데, 뚝배기에 끓여나오면 국물을 비울 때까지 그 열기가 비린내를 무마시켜준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맞은 아침은 회사 근처의 설렁탕집에서 해장을 했다. 설렁탕 국물은 기름기가 떠있지 않고 맑았다. 곰탕과 설렁탕의 큰 경계는 내장이 들어가냐의 여부다. 설렁탕에는 내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설렁탕은 사골로 국물을 내고 양지고기를 얇게 저며 넣고 끓였다.
 

사골 국물에 양지고기가 들어간 설렁탕. ⓒ 막걸리학교

 
탕 옆에 깍두기와 풋고추와 된장이 놓여있다. 탕에 소면이 담겼고 그 위로 송송 썬 흰 파가 얹혀 있다. 소면을 건져 먹고 나서 깍두기 하나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고슬고슬한 밥을 풀어 넣고 국과 함께 한 숟갈 입에 담았다. 수저로 떠먹는 국밥 문화도 독특한 한국 음식 문화다. 대충 씹어서 목을 넘기는데도 밥알이 위벽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편안하고 든든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뜨거운 뚝배기 국물과 연대하는 해장 반찬이 등장한다. 풋고추다. 매운 풋고추는 칼칼하고 화끈하게 속을 정리한다. 고추를 흙빛 된장에 찍어 먹으면, 속이 화끈하게 달아올라 금세 실핏줄을 타고 양 볼과 콧등에 땀방울이 돋기 시작한다. 알코올 기운은 땀과 호흡기로도 빠져나간다.

이러니 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둘러보니 어제의 숙취를 풀기 위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들어올 때에 흐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깊은 숨을 내쉬며 설렁탕집 문을 나선다. 회사 앞 설렁탕집이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몸은 술에 빚지고 해장국으로 빚을 던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