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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1.26 18:38 수정 2019.11.26 18:38

그를 한국 최고의 와인 생산자로 만들어준 로제 와인. ⓒ 막걸리학교


그는 온전하게 60년을 살았다. 살아온 날들 중에서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도시에 나가 성공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고 자란 시골로 돌아와 와인을 빚으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그가 고향 영동으로 돌아와 포도농사를 짓겠다고 생각한 것은 20년 전 일이다. IMF 무렵에 청주에서 하던 일을 접고 고향에 내려오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오려면 너만 와라"고 했다. 혹여 아들내외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마을에 소문이 날까봐서였다. 그는 청주에서 커튼업을 13년 하다가 동생을 따라 쌈밥집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현장 인부로도 일하고 통닭구이집도 했다.

처음 왔을 때에 과실주를 빚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도란도란 재미있게 지내며 웃음꽃을 피우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가 농사짓던 포도밭 일을 돕다가, 포도즙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싶어 포도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2005년에 영동군이 포도 와인 산업특구가 되었고, 2008년에는 영동대학교(현 유원대학교)에서 와인을 배웠고, 2010년에는 양조 면허까지 따게 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을 '미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술을 샤또미소라고 부른다. 샤또는 성을 뜻하며 와인을 재배하는 공간으로 확장시켜 쓰고 있다. 그리고 도란도란 살고 싶어 양조장 이름을 도란원이라고 했다. 와인색 옷을 좋아하는 그의 이름은 안남락이다.
 

도란원의 카페에 걸린 액자. ⓒ 막걸리학교

 
그도 와인을 처음 빚게 될 때에 외국 와인을 따라하려고 했다. 그는 영동에서 많이 재배되는 캠벨얼리로 술을 빚는 한편, 양조용 포도나무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를 들여다 키웠다. 그런데 외국 품종들이 가을까지는 잘 크다가 겨울에 얼어서 거의 죽은 듯하더니, 이듬해 뿌리가 살아나 다시 힘없이 자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와이너리 대표들과 함께 프랑스로 와인 여행을 갈 일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평하는지 듣고 싶어 그는 자신의 로제 와인을 가지고 갔다.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데 프랑스 와인 전문가가 말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잘해도 오래된 유럽 와인 역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사는 동네의 포도로 술을 빚어야 합니다. 로제 와인은 색깔도 예쁘고 과일향도 잘 살렸습니다."

그는 그게 정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렵게 외국 것을 따라가지 말고, 우리 것으로 최선의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 대표는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와 쇼비뇽과 메를로를 베어버렸다.

그는 국내 식용 포도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캠벨얼리로 술을 빚었다. 소믈리에들은 처음에 캠벨얼리로 만든 와인을 향이 가벼워 포도주스 같고, 색깔이 옅고 발효향이 적다고 저평가했다.

실제 캠벨얼리는 과즙이 많고 향이 풍부해서 식용으로 좋은데, 탄닌이 적고 색이 옅어서 와인을 만드는 데는 약점들이 많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탄닌의 떫은 질감을 확보하려고 줄기를 와인에 담궈 보기도, 포도씨를 갈아서 넣어보기도 했다. 색이 짙는 머루와 향이 짙은 MBA 머루포도를 캠벨얼리와 섞어 보기도 했다.

그가 캠벨얼리로 로제 와인에 도전한 것은 영동에서는 처음 시도한 작업이었다. 캠벨얼리 레드 와인은 색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로제 와인은 투명한 장밋빛 연홍색이 돌아 색을 즐길 만했다. 또 한국인들의 와인 감상법은 발효향보다는 과일향에 더 호감을 표하는데, 캠벨얼리 로제 와인에는 맞춤하게 달콤한 딸기향, 복숭아향이 섞여 있었다.

로제 와인을 만들려면, 처음부터 즙을 짜서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포도를 파쇄하고 2~3일 지나 과육에서 즙이 생길 때, 이를 절반 정도를 추출하여 발효시킨다. 그는 오크통 담아 숙성시키는 와인을 보면서, 좀더 한국적인 숙성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뒷산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와인에 담가 숙성시켜 보았다. 대나무 마디를 살려 속이 빈 대나무 통을 와인에 넣고 숙성시키면, 대나무통 속으로 와인이 스며들어 시고 떫고 쓴맛이 줄고 균형감 있는 맛이 생겼다. 그는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캠벨얼리로 10년을 노력하니, 이제는 캠벨얼리로 만든 그의 와인에 대한 소믈리에들의 평가도 달라졌다. 달콤한 향기가 좋고 개성 있다고 평했다. 그는 2013년에 엉겁결에 로제와인으로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과실주 부문 대상을 받았는데, 5년이 지난 2018년에는 또다시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의 로제와인은 물러서지 않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그의 로제는 색이 투명하게 곱고 향이 중독성 있을 만큼 달콤하면서, 입안에 들어 무겁지 않고 깔끔하고 다채로운 과일향이 지나간다. 캠벨얼리 포도송이에서 추출해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액체와 영혼을 불러낸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한 종류의 술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영동에서 나는 과일이면 뭐든지 그의 집에 와서 술이 될 수 있다. 로제, 레드, 아이스, 사과, 복숭아, 아로니아, 스파클링, 증류주의 영역을 넘나든다. 다양한 와인을 만드니 힘들고 고단하긴 하다. 복숭아 와인을 만들려면 씨를 빼야 하니 어렵다. 자두 와인은 단백질 성분이 많아 즙의 색깔이 탁해서 맑게 하느라 어렵다.

스파클링 와인은 두 번에 걸쳐 발효하느라 손이 많이 간다. 사과 와인을 만들다가 파쇄기 벨트에 손이 감겨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아로니아 와인은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 친구를 돕다가 빚게 되었다. 아로니아 1㎏에 1만원 하던 것이 2천~3천원으로 폭락해서 사달이 났다. 아로니아는 생과로는 먹기 어렵고, 가공을 해도 맛이 없어 소비가 안 되었다. 돌파구로 분말과 과즙을 만들었지만 악성 재고만 쌓였다. 그래서 아로니아로 술을 빚었다.

그가 다양한 술을 만들어서 축제장에 나가면, 시음하러 온 이들의 입맛에 어느 술 하나는 맞는 게 나온다. 그때의 만족감이란, 그로 하여금 미소짓게 하고 새로운 술을 만들게 하는 동력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몸이 힘들지만 그는 15년째 와인과 연애에 빠져 있다.
 

포도넝쿨이 올라가고 와인 숙성고가 들어서면서, 고향집이 와이너리로 바뀌었다. ⓒ 막걸리학교

 
그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인접한 충청도 영동, 민주지산의 물한계곡 아래에 산다. 영동은 충청도의 과묵함이 있지만, 경상도의 격렬함과 전라도의 농밀함도 함께 지니고 있다. 깊은 산골이지만 이웃들과 내왕하는 법을 안다. 그가 와인을 빚은 것은 외국에 견주면 아주 많이 늦었지만, 감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영동 사람들과 와인을 연구하고 빚으며 산다.

영동 와인연구회 회원이 60명이고, 와이너리 면허를 낸 농가가 43곳이다. 캠벌얼리로 술을 빚으면, 한 해에 43종 이상의 술이 나온다. 스스로 장점과 약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혼자하면 1번이지만 영동이라서 4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영동와인 축제 때는 그중에 우수한 품종의 술을 선발하여 선을 보인다. 그 함께함이 그의 와인과 그들의 와인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안남락, 그가 사는 영동은 과일과 함께 사람까지도 향기롭게 발효되는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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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