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3
원고료주기
본문듣기 등록 2019.11.21 08:50 수정 2019.11.21 08:50

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 연합뉴스/EPA


1년 전, 2018년 11월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노란조끼'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 이들은 53회째로 쉼 없이 이어온 집회를 전국 230개 지역에서 열었다.

처음 SNS를 통해 이 움직임이 전국에 조직되어갈 때, 기존 좌파정당들과 노조들은 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기존의 조직에 뿌리를 두지 않고 정치 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 민중에 대한 불신이었다. 마침내 이 정체불명의 아나키스트적 민중조직이 뚜껑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화난 민중들이 뿜어내는 화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단호했고, 결연했다.

그들은 복부에 기득권 엘리트 세력에 대한 분노를 장착하고 있었다. 정부의 유류세 인상은 가슴에 튀어오르던 불꽃을 들판으로 번지게 한 한줄기 바람과 같았다. 올랑드 시절의 한 장관은 "우리가 5년 동안 올랑드를 설득해 이룬 것보다 더 큰 것을, 노란조끼는 단 한달 만에 얻어냈다"는 말로 그들의 위력을 인정했다.

기존의 운동 문법도, 적절한 협상의 룰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시작부터 샹젤리제 한복판에서 시가전을 펼쳤다. 샹젤리제는 동쪽 끝에 엘리제궁이 자리하고 있기에 집회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란조끼는 자신들의 집회를 '허락'받지 않았다. 엘리트라는 자들이 지은 당신들만의 리그에 균열을 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중앙도 지도자도 없는 '오두막 정치'
 

원형교차로에 오두막을 짓고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노란조끼노란조끼는 사라졌다가 다시 1년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 1년 전부터 방방곡곡에 있는 원형교차로에 이렇게 오두막을 짓고, 지역의 노란조끼들끼리 꾸리는 단단한 연대와 경험의 공동체를 꾸려왔다. ⓒ Luc Gwiazdzinski


1년 사이 노란조끼 운동을 분석하는 50여 권의 책과 만화가 쏟아지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랩이 등장 했다. 세상을 변혁하기보다 분석하는 데 익숙한 숱한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노란조끼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며,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하던 프랑스의 얼굴을 만나는 중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여진 노란조끼의 상징이 불타는 샹젤리제였다면, 정작 이들의 원동력은 전국 방방곡곡 원형교차로(Rond-Point)에 지어진 그들의 오두막에서 나왔다.

"우린 여기서 매일 모든 것을 배웁니다."

언론인이자 국회의원인 프랑수아 루팽과 영화인 질 페레가 함께 만든 로드무비 <난 태양을 원해>는 노란조끼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얼굴과 그들의 영혼이 모여 지은 공동체를 처음으로 조명한 다큐멘터리(2019년 4월 개봉)다. 모든 정치권이 하루아침에 등장한 이 민중 조직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초선의원 루팽은 국회의원으로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단순명료한 사명감을 가지고, 노란조끼들이 진지를 치고 있는 전국의 원형교차로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네기로 한다. 친구인 영화감독 질 페레가 그 길에 따라나서며, 영화는 시작된다.

전국의 톨게이트를 점거하며 운동을 시작한 이들에게 버려진 원형교차로가 진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란조끼를 입고 존엄한 제 삶의 주인이 되길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거기서 처음 보는 이웃들을 만났다. 소외되고 단절되어 고통스럽게 축소되는 삶을 견디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동시에 이런 일이 생겨나도록 일을 벌여왔고, 책임을 물어야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공사장에서 쓰고 남은 목재, 대형쇼핑몰에서 버린 상자들을 주워와 오두막을 짓고 모닥불을 피웠다. 거기서 아낌없이 서로가 가진 경험과 지식, 일자리, 노동력을 나누는 공동체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함께 구호도 만들고, 전단도 쓰고, 걸개 그림도 그렸다. "마크롱 퇴임"에서 시작된 그들의 구호는 "금융자본에 세금을" "공공 병원 건드리지마" "지구의 종말, 월말의 빈지갑은 같은 투쟁"으로 진화해 갔다. 밥과 커피, 일자리를 서로 나누고 경험과 지혜, 정보를 나누는 장을 열어갔다. 거기선 아무도 지도자가 되지 않고, 아무도 지시하지 않는다. 모두가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표하고, 모든 결정은 투표로 이뤄진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이 작은 아고라 광장은 서로 대화하고, 서로의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연대와 박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변모해 갔다.

중심적 지도자의 부재는 노란조끼의 태생적 한계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변모하는 노란조끼의 불가지한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노란 물결에 대하여 - 원형교차로의 유토피아 노란조끼 운동을 지리학자들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 지은이 Luc Gwiazdzinski 외 2명 ⓒ 목수정


"노란조끼들은 대형 상업공간들이 단조롭게 늘어서 있는 일그러진 프랑스, 추한 프랑스를 표상하는 원형교차로라는 공간을, 단 몇 달 만에 새로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엄한 연대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프랑스 지리학자 뤽 귀아진스키가 노란조끼들이 건설해간 새로운 도시외곽 풍경에 대해 던진 찬사다.
 

다니엘 살나브 저, 조조 질레존 (노란조끼)노란조끼 운동 1년 동안 앞다투어 발간된 노란조끼에 대한 사회적 분석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인 다니엘 살나브가 썼다. ⓒ 목수정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자 작가인 다니엘 살나브는 노란조끼를 조명한 자신에 책(JOJO, Gilet Jaune)에서 노란조끼 운동을 "사회적 절규에 대한 민중의 해답이다. 그들은 지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붕괴를 끝장내고, 민중이 스스로 연대하는 삶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선 것"이라 정의했다.

전 지구적 요구, 민주주의를 재정복하라
 

영화 의 한 장면 공동 감독인 왼편의 프랑수아 뤼팡, 중간의 질 페레, 오른쪽 노란조끼의 한 사람 ⓒ 영화 캡처

 
"지구상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민중들의 반란의 공통점은, 단 하나의 계급, 혹은 마피아 집단에 의해 모든 권력과 부가 독점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다. 그 분노는 사소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경제 분야의 결정이 촉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칠레에선 지하철 티켓이 넘쳐 흐르게 한 '한방울의 물' 역할을 했고, 에콰도르와 프랑스에선 기름 값 인상이, 레바논에선 왓츠업(통신 앱) 가격 인상이 분노를 끓어 넘치게 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율되지도, 운동을 지휘하는 지도자도 없는 그들은,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존엄과 평등을 최우선 과제로 놓는다."

2주전 <르몽드>는 사설을 통해 노란조끼의 봉기를 전세계에 거침없이 번져가고 있는 민중의 반란의 시발점에 놓았다. 사소한 생활비 인상에서 촉발해 민중 봉기까지 온 건 필연적이란 시각이다. 지배계급의 자본 독점이 더 이상 용납하기 힘든 임계점을 넘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민중 앞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이중적 행각을 벌이다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1만명 체포, 1천명 실형... 마크롱은 아직도 민중을 모른다

정부는 모두 3차례에 걸쳐 노란조끼의 호령에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최저임금 월 100유로(약 130만 원) 인상, 은퇴자의 사회보장 기금 인상, 탄소세 인상 철회. 저소득층에 대한 전기세, 난방비도 약속했다. 비용으로 치자면 약 170억 유로(약 22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마크롱은 취임 초 철회한 부유세 재도입을 거부했다. 세수를 늘이지 않은 채 제공되는 선물은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수를 만든다는 걸 이들은 알았다. 노란조끼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마크롱은 2개월간 전국을 돌며 국민들과의 대화(라 포장하고 실은 본인의 일방적 설명이었던)라는 헛된 시도도 했다. 그러나 10월말 BFMTV가 발표한 '마크롱 중간평가' 여론조사는 프랑스인 62%가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80%의 프랑스인은 마크롱의 정치가 남은 임기 동안 자신들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앞에선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으나, 지난 1년간 노란조끼로 체포된 시민은 1만1천 명에 이르고, 이중 천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는 시위에 함께 하던 국회의원들마저 경찰의 무차별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엠네스티, 유엔 인권위 등의 지속되는 권고와 우려에도 마크롱 정부는 '공포'라는 극약을 사용하길 멈추지 않았다.

11월 12일 전국의 공공병원들이 파업을 강행한 데 이어, 12월 5일에는 전 영역에서 총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홍콩과 칠레의 인민들이 보여주듯, 무자비한 폭력은 더 강한 저항을 야기할 뿐이다. 그걸 마크롱 정부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노란조끼가 뿌린 불씨는 겨울의 초입에서 다시 한 번 프랑스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