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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17 08:35 수정 2019.07.17 09:24

지난 4일 경남도교육청 앞 도로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경남노동자대회에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고 있다. ⓒ 윤성효

 
"우리 주위의 모든 일자리 중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몇 퍼센트나 될까요?"

강의 등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파트타임, 임시직, 공공부문의 재정 일자리를 다 포함해서 묻는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한다. 그리고 기다려 봐도 여간해서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른 '정규직' 비율이 67% 정도라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 주위의 모든 일하는 사람 100명 중에서 67명이 정규직이라는 건데, 정말 그런 것 같으세요?"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다른 숫자를 하나 더 제시해 본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 연구 중에서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일자리 수를 파악해 보기 위해서 정규직(67.2%), 노동조합 있음(25.7%), 300인 이상 대기업(12.4%)이라는 세 항목에 모두 해당되는 일자리(이상 2016년 8월 기준)의 비율을 구해 본 것이다. 그 숫자는 7.6%다.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 비율한국노동연구원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김복순 외, 2017)에서 2016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집계한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 비율 ⓒ 김복순

 
"67%와 7.6% 중에서 어느 쪽이 진짜 정규직 비율인 것 같으세요?" 이렇게 물으면 비로소 한 목소리의 대답이 나온다. "7.6%요!" 어느 때, 어느 자리든지 예외는 없었다.

이는 곧,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규직'이란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통계청 집계 '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청 집계 상의 '정규직'은 사실 우리 사회의 정규직 일자리의 숫자를 센 결과가 아니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서 '비정규직'을 뺀 숫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한다.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정규직을 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정규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어느 법 조항에도 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없다. 법에 존재하는, 정규직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또는 그런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다. 예를 들어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4조 2항은 사용자가 만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보도록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정의는 '무기계약직'에도 들어맞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은 같은 것"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규직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례들만 가지고 살펴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현장을 다룬 "20년 근무했는데 월급 200만원…"(경향신문 2019.7.4) 기사를 보면 어느 공공기관의 무기계약직으로 14년간 일했다는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는 공무원들과 비교할 수 없게 월급이 적다'는 점과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인데도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근속수당도 주지 않는 처우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 

"7년 버텨 정규직 됐는데...3개월 만에 자진 퇴사"(국민일보 2019.7.10) 기사는 비정규직으로 7년간 일 하다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지난해 12월 정규직이 됐지만 곧 사표를 낸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한다.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채용 방식을 취하는 등 기존의 정규직과는 여전히 차이가 나는 형태의 계약인 것도, 월급이 비정규직 당시의 200만원 그대로라는 점도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정규직화 해달라고 했습니까?"(프레시안 2019.7.1) 제목의 기사는 자회사 채용 방식의 고용, 무기계약직을 '가짜 정규직'이라고 지칭한다. "정규직이면 당연히 직접 고용해야지, 자회사 이게 대체 뭡니까? 이건 그냥 조금 큰 하청업체로 들어가라는 거잖아요? 이럴거면 왜 정규직화 한다고 사기를 치나요"라는 어느 노동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인천공항을 방문해 약속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이미 빛이 바래버렸다고 평가한다.

학교 비정규직 "공무원 연금? 바라지도 않아…이름 달라는것"(노컷뉴스 2019.7.3) 기사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을 앞두고 한 급식 조리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는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공무원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전한다. 최하위 9급 공무원의 80% 수준으로의 임금 인상, 정규직과 동일한 기준의 수당 지급, '교육 공무직' 직군 법제화 등 요구를 위한 파업이라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과 동등 대우 해달라니…공시생, 비정규직 파업에 '허탈'(문화일보 2019.7.5) 기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및 처우 개선 요구에 대해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이 '평등이라는 이름의 역차별'이라 여긴다고 전한다. '치열한 시험을 뚫은 공무원 합격자와 똑같은 보장을 해 달라니 무리'라는 것이다.

이상의 기사들로 봤을 때 정규직과 관련한 엄청난 난맥상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따져 보면 혼란의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형태'로의 전환으로 보고 있는 반면, 사회 전반의 인식은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

정규직 의미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정규직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정리해 보면 "고용안정성이 있고, 임금 및 처우가 동종 업계 또는 같은 조직 내 동일 업무 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적정한 수준이고, 승진이나 기업 복지 등 각종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우선이 되는 요건은 '고용안정성'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다르다.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 조직의 안정성이 있어야 고용안정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서 명절에 만난 친척이 "너 취업했다며? 정규직이니?"하고 묻는 경우의 예다. 물론 여기에는 그와 같은 조직에 '공채'라는 경로로 취업한 경우만 정규직이라고 보는 시각도 들어 있다. '무기계약직' 등 다른 형태로 취업했다면 이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현실적인 인식이다. 대기업 하청 구조에 종속돼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정규직이어도 안정성이 충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기업 직원과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어도 임금의 차이가 많게는 두세 배까지 나기도 한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차별받는다'고 느낄 만한 정황이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승진에 있어서 한계가 분명하고, 각종 기업복지 혜택에서 제외되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하찮다고 여겨지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당연시 된다면 그 명칭이 무엇이건 비정규직이라고 인식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90%라면, '철폐' 가능할까?

이와 같은 인식 하에서 보면, 정규직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67%라는 통계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보편적인 의미의 정규직 비율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노동 전문가들 가운데서는 앞서 소개한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 연구 결과와 같이 10% 미만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10~20% 정도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통계청 집계 정규직 비율2018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각 8월 기준) ⓒ 황세원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67%라고 볼 때와 10% 안팎으로 볼 때의 정책적 대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 목표를 세울 때 고용율 70%를 '완전고용'에 준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정규직 67%라는 상태는 "정책 수단을 사용해서 정규직 비율을 조금만 높이면 '비정규직 제로'라 할 수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규직이 전체의 10%라면, 즉 '비정규직'이 전체의 90%라면 어떨까? '비정규직 제로'라는 정책 목표가 말이 될까? 정규직 비율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 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비정규직들의 임금과 처우, 차별받는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정책 목표여야 할 것이다.

정규직과 관련된 모든 논란, 논의를 관통하는 것이 '차별받지 않는 일'에 대한 열망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어떤 일을 하건 비인격적 대우를 당하지 않을 권리는 사실상 기본적인 인권의 차원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제 10조)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을 떠맡거나, 갑질을 당하거나, 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을 받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하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진작에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지 그랬어?"라거나 "조금 도와줄 테니 이제라도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라"는 식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도, 아니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도 그런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동의 최저선을 적극적으로 높여야 할 일이다.

노동의 최저선을 끌어올려야

그와 동시에,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정규직 일자리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과도하게 높은 안정성과 소득, 상대적으로 높은 권한과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일자리들을 그대로 둔 채로는 나머지 일자리들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채 시험, 자격 시험 등의 과정을 통과해서 정규직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물론 일정한 능력이 있겠지만, 그것이 꼭 조직이 원하는 능력 그대로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일 때 능동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에는 수동적으로 변하고 개인의 삶을 우선시 하더라는 얘기도 흔히 들린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안 정규직 자격을 따기 위해 개인적인 일들을 뒤로 미루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그러나 이런 인력들이 대부분인 조직이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기업들이 기존의 정규직의 고용은 보장하되 신규 인력은 되도록 정규직으로 뽑지 않는 식으로 정규직의 비율을 줄여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의 표상과도 같은 은행 중에도 신입사원 전체를 무기계약직으로 뽑는 곳이 나왔을 정도다. 어쩌면 '비정규직 제로'가 아니라 '정규직 제로'가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는 출발점은 어디여야 할까? 일단은 통계청이 67%라고 발표해온 정규직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온 정규직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정부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철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말들은 구호일 뿐 현실적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정부도 노동계도, 실체도 없는 정규직을 계속 지향하기보다는 노동의 최저선을 높이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정확한 용어가 현실을 규정하고 좌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좋은 일자리'의 개념을 다시 분명히 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노동은 그 어디에서도 용인되지 않도록 한다면, 굳이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를 계속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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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 연구,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 개발을 담당했다. 현재 LAB2050 연구실장으로 일하며 고용위기 시그널 분석, 지역 일자리 구조 전환 연구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