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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04 12:23 수정 2019.07.04 12:23

여자 월드컵 결승 진출 기뻐하는 미국 선수들미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의 스타드 드 리옹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준결승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미국은 이날 잉글랜드를 2-1로 따돌리고 3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 ⓒ 연합뉴스/AP


U20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예기치 않은 선전을 거듭하며 온 나라를 흥분시킬 무렵, 프랑스에서는 8번째 여자월드컵이 그 막을 열었다. 6월 7일 프랑스 대 한국의 개막전으로 시작된 이번 대회는 오는 7일 결승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세계 전역에 들불처럼 번진 '미투운동(성폭력 고발 운동)'과 그에 힘입어 새롭게 일어난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 치러진 대회인 만큼, 이번 월드컵은 시작 전부터 페미니스트 혁명의 용광로가 될 조짐을 보였다. 대회 기간 내내 차별에 저항하는 여전사의 목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울려 퍼졌다. 스포츠가 불평등을 향한 사회적 투쟁과 만나 멋진 변주를 들려주었다.  

영원히 회자될 네 가지 장면
 

여성 축구선수와 다양한 인종의 선수들로 구성된 베이비풋 기구 프랑스 베이비풋 기구 업체 봉지니(Bonzini)는 이번 여성월드컵을 계기로 여성 선수들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대중적 놀이기구 베이비풋을 출시했으며, 앞으로 모든 그들의 제품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는 모델로 제작될 것임을 밝혔다. ⓒ Richard Martin_Equipe

 
장면 하나. 프랑스 여자월드컵의 공식 후원업체이기도 한 놀이기구 '베이비풋(Babyfoot)'의 메이커 '본지니(Bonzini)'는 여자 월드컵을 앞두고 남녀 축구 선수가 함께 경기하는 '베이비풋'을 최초로 출시했다. "평등과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 제작되는 모든 베이비풋은 다른 성별과 인종이 공존하는 축구선수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혀 여론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성과 남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베이비풋의 출현은 축구라는 세계에 불어 닥친 차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전주였다.

장면 둘.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미국팀은 여자월드컵을 페미니스트 월드컵이 되도록 견인한 주역 중 하나다. 이들은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역대 올림픽에서 4번이나 금메달을 차지한 세계 최고의 여성 축구팀이다. 그럼에도 남성대표팀과 똑같은 수의 경기에 출장해도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아왔다. 이들은 지난 3.8 세계여성의날에 이는 성차별에 근거한 임금차별이라며 미축구연맹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월드컵에 출전해 이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 결국 대회가 끝나는 즉시 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여성대표팀이 남성대표팀에 비해 국제무대에서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이유가 있다. 미국 주류 남성계가 영국의 스포츠 문화와 거리를 두고 자신들만의 스포츠를 개척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식축구를 국민스포츠로 만든 대신 정통 축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취해왔다. 뜻하지 않게 주류 남성들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축구는 여성이나 소수민족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역이었다. 미국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여자선수만 170만 명이다. 이런 토대는 훌륭한 선수를 발굴하는 건 물론, 대중적 인기를 견인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공격수인 메간 라피노에는 경기 전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손을 가슴에 얹는 행위를 보이코트 해왔고, 우승을 하더라도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인 트럼프의 초대에는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해 주목받기도 했다.

프로축구 선수 지위를 '쟁취'한 여성들

장면 셋 . 마라도나와 메시의 나라 아르헨티나. 축구가 종교적 지위를 누리는 이 나라에서 여성들은 축구를 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다. 남성들이 축구를 그들만의 영역으로 가두기 위해 다양한 장벽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동네 공터에서 축구를 하면 돌이 날아오고, 오토바이를 탄 남자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 모든 비난과 박해를 감수하며 축구를 권리처럼 해온 여성들이 있었고, 긴 투쟁 끝에 마침내 프로 축구선수의 지위를 쟁취해 냈다. 

여성들은 4년 전부터 시작돼 나라 전체를 뒤흔든 페미니스트 운동의 물결에 힘입어 지난 1월 여성에게도 프로축구 선수의 지위를 허락하라며 축구연맹을 법원에 제소했다. 이 소식은 즉각 전사회적 여성운동으로 번져갔다. 아르헨티나 여성축구팀이 12년 만에 여성월드컵 출전을 확정지은 지 일주일 뒤, 마침내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제 아르헨티나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응급의료진이 갖춰진 상태에서 경기할 수 있고, 정식 코치도 둘 수 있다. 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수준(1만5000페소, 약 45만 원)에 불과하지만 급여도 받을 수 있다. 평등으로 가는 첫 걸음을 시작한 것만으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위안을 삼는다. 그들의 투쟁과 승리의 스토리는 월드컵 기간 중에 널리 회자됐다. 관중들은 이전 월드컵 준우승팀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을 향해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장면 넷. 6월 11일 프랑스 렌느에서 열린 칠레-스웨덴 전을 앞두고, 응원석에 모인 600여 명의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이 함께 일어나 <여성의 찬가(Hymne des femmes)>를 불렀다. 이 이벤트는 렌느시가 여자 월드컵 경기를 계기로 여성인권을 환기하기 위해 한 합창단에 제안했고, FIFA의 동의를 얻어 진행됐다. 합창단은 이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600명이 모였다고 한다.  
 

프랑스여자월드컵 경기 시작 전 관중들이 <여성의찬가>를 부르는 모습 ⓒ L'Obs

 
1970년대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가사를 쓴 이 노래는 여성해방운동에서 상징적 노래다. 기원은 1933년 독일 나치당에 의해 수용소에 끌려간 유태인들과 반나치 정치범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도 널리 불렸으며, 유럽 전역에서 저항의 시기에 매번 소환되는, 이를테면 유럽판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겐 과거가 없네 
 태초부터 우리 여성에겐 역사가 없었네.
 우린 모두 검은 대륙 
 일어나자 여성들이여, 노예들이여
 우리의 족쇄를 부수자.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종속되고, 모욕당한, 우리 여성들
 구매되고, 판매되며, 강간당하는 우리들 
 세상 모든 집에서, 유배된 존재들
 불행속에서 홀로 잊혀진 우리들 
 그들은 우리들을 갈라놓으려 하네.
 우리를 우리의 자매들로부터 
 떼어놓으려 하네
 분노의 시간이 우리에게 왔다
 여성들이여, 우리의 힘을 발견하자
 우리를 발견하자.
 함께 말하자, 바라보자
 그들은 우리를 억압한다.
 함께 저항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치러진 24개팀의 축구경기는 80%에 육박하는 관중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남성 축구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여성축구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승부를 떠나 이번 대회는 단지 남성들과 같은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싸웠던 선수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관중들은 이 특별했던 기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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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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